생일이었다. 어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일이라는 날짜에 대해 둔감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스스로.
어렸을 때부터 항상 생일은 엄마가, 그리고 가족들이 챙겨주었다.
엄마는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완벽한 엄마를 만들어냈고, 단 한번
도 내 생일을 잊었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릴 때면 생일
은 당연히 화려하게 약간의 요란이란 양념을 첨가하는 날로 으례
생각했고, 일년에 한번 있는 생일이 매번 기다려졌다. 오죽 했으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미친 토끼(라고 번역되었다;;;mad
rabbit정도 였을까나?;;)와 그의 친구들이 '안생일 축하파티'를 하는
것이 기억에 남아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안생일을 축하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일년에 특별한 날이 한번 밖에 없으니까 남은
날들을 축하하는 거야..라고 말하던 미친 토끼의 논리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루이스 캐롤의 원문을 읽지 못해서 그게 그의 아이디어
인지, 디즈니에서 만들면서 새로 삽입한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나 멋진 아이디어였다.
대학을 들어오고, 집을 나와서 살게 되면서 생일을 챙긴다는 건 그
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생일은 3월 중에서도 한참 먼저라 중고
등학교 때부터 그저, 한해 전의 친구들이 생일을 챙겨주곤 했었다.
개학하고 정신없고, 새친구들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고, 새로운 교
실, 새로운 사람들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생일이 지나버리곤 했었
으니까..대학을 오면서 그건 더 심해진 것 같다. 정말이지 개강하고
나면 정신이 없었다. 예과 때에는 새터 마무리 하느라 정신없이 생
일이 지났고, 본과 와서는 세상에, 3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험을 준비해야했다.-_-
게다가 어제가 생일이었다는 것을 난 하루 전날인 5일에 깨달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내일이 생일이구나..하다가 하루종일 족보를 쓰고,
한창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는 형진이에게서 세시간쯤 일찍 생일축하
를 받고, 다시 공부로 돌아갔다. 딱히 생일이라고 해서 어릴 때마냥
두근거리는 건 아마도 대학 입학하고 몇 해를 거치면서 점점 가라앉
아갔을 게다. 생일..생일이구나..이런 식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생일'
이라는 두 음절의 단어가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구나..싶었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아침에 집에 전화해서 엄마한테 고맙다는 인사
를 드리기도 했는데, 참 밍숭맹숭하게 있었다. 오히려 잠에 취한 날,
집에서 식구들이 전화해서 차례로 돌아가며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
주며 깨워주었다. 엄마는 내가 없지만, 그래도 생일상을 차렸고, 전
화를 해서는 생일상을 차렸다고, 생일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가
족과 떨어져서 생활하면서, 생일에 미역국도 못먹고 있을 딸을 생각
한, 당신 나름의 생일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작년에는 햇
반 미역국을 사먹었다.;;;)
사실은 축하받고 싶었다. 생일이구나..라고 늦게 인지하긴 했지만,
생일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되뇌어지면서 새삼스레 낯설었지만, 태어
나주어서, 내가 지금 여기에 있기에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라면,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면, 없어서는 안되는 정도는 아
닐지라도 누군가의 삶 속에서 무언가의 의미를 갖게 된다면 나는 축
하받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그렇게 축하받고 싶었다. 생일이
라서 기뻐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왜 축하하고 축하받는지
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으례껏, 어릴 때부터 축하해오던
일이고, 축하받던 일이고, 그리고 뭔가 화려함이 깃든, 하나의 기쁜
습관이었다.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것을 매개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
이고, 맛있는 것을 먹고, 당사자를 축하하고, 멋진 날을 맞이했음을
축하하는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 문득 피어나서 자리잡은 생각
은..내가 원했던 것이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누군가가 되었기
에 존재해서 다행이다..라는 의미의 축하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
다는 것이다. 글을 쓴지 워낙 오래라 예전처럼 매끄러운 문장은 나
오질 않는데, 항상 내 삶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축이 있다면, 그 중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나를 갈등하게 만드는 것은, 적은 사람에게
깊이있는 사람이 될 것인지, 혹은 다수에게 적당한 깊이를 갖는 사람
이 될 것인지의 문제였다.
어쨌든, 자라가면서 엄마가 생일을 잊었다거나, 해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생일을 챙기지 않는 집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해마
다 달력이 나오면 생일부터 표시하는 우리집에 꽤나 만족스러워졌
다. (이렇게 쓰고보니 참 단순하다, 나란 사람은..)우리 남매야 상관
없지만, 엄마와 아빠는 음력 생일을 챙기고 있었으니까...
어릴 적에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최고의 엄마 생일 선물은 엄마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우리 가족의 생일은 매번
화려했다. 미역국과 붉은 팥으로 물든 찹쌀밥, 명태전, 나물, 너비아
니구이, 갖가지 계절 과일들, 커다란 도미..매번 조금씩 달라지긴 했
지만 엄마는 생일 전날부터 미역을 자르고, 팥과 찹쌀을 불리고, 명
태를 냉동고에서 냉장실로 옮겨서 적당히 녹이고, 나물을 씻고, 고
기를 준비하고, 시장-정말로 시장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골목골
목 신기한 음식들이 즐비한 재래시장-그리고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음식들을 완성시켰다.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지는, 가득 차는 거한
생일상이었다. 항상 모두의 생일 때마다 깨우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
리고, 식탁에서 내려가서 상을 펴놓고, 식탁에 올라와 있는 음식들로
상을 차리고,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랬다. 하
지만 엄마의 생일에는 미역국과 명태전, 작은 생선 한마리, 때때로는
나물만 오를 뿐이어서, 거기에다 엄마가 생일상을 따로 차리진 않고,
그저 식탁에서 케이크에 초가 잠깐 타다 말 뿐이어서, 그래서 엄마가
엄마 생일도 다른 가족들의 생일만큼 화려한 생일상을 갖기를 원했
다. 지금도 엄마에게 해주고픈 선물은 어차피 내가 사줄 수 없는 가
격대의 화장품이나, 옷이나, 가방이나 그런 것들이 아니라(집에서
용돈받는 거니까 엄마가 당신 스스로 사시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생일에 펴지는 상을 가득 채운 생일상인 게다.
어른이 되면, 매년 엄마의 생일상을 차려드릴 수 있을 줄 알았다.
덧붙여서, 엄마의 생일은 음력 칠석이라 할머니 제사와 겹치기도 해
서, 그날은 정말, 어릴 때에는 몰랐지만, 자기 생일에 미역국도 못먹
고 일을 해야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머..간간이 미역
국에 케이크가 등장하는 날도 기억 속에 있지만..그래도..생일상은
없었다.
각설하고, 어른이 되면 매년 차려드릴 수 있을 줄 알았다던 생일상
은 내가 법적인 어른이 된 후로 단 한번도 없었다. 항상 서울에서
바쁘게 있다가 내려갔고, 엄마 생일에 있긴 했는데 무얼하고 있었
는지 모르겠다.-_-a심지어 작년에는 8월 16일에 개강했는데, 엄마
의 생일은 8월 말이어서, 전화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엄마의 생일상을 지금까지 단 한번밖에 못 차려드렸다. 중3때인가,
고1 때쯤, 전까지 벼르고 벼르다가 올해는 엄마 생일상을 차리고
말 것이라고 선포했고, 돈을 받아서 정민이랑 할인마트에 가서 큰
도미를 고르고, 엄마가 생일상에 올리던 음식들을, 기억을 더듬어
가며 사서는 집에 가자마자 손질을 시작했다.
결국 나물은 엄마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지만(나물을 어떻게 만
드는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지금 하라고 한다면 적
어도 3색까지는 하겠다..ㅋㅋ),도미의 비늘을 긁어내고, 배를 가르
고, 내장을 꺼내고, 소금에 재우고, 미역을 꺼내다가 물에 불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도미를 굽고, 미역국을 끓였다. 아, 붉은
팥이 들어간 찹쌀밥도 했다. 스스로도 뿌듯했고, 참 힘들었다. 그
래도 엄마의 생일상에 하나라도 더 들어갔다는 게 그렇게 기쁠 수
가 없었다. 그날 생일상을 폈는지, 식탁이었는지는 아쉽게도 기억
이 나질 않는다.
방금 글을 쓰다가, 올해는 가족들의 생일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
을 새삼 깨닫고, 달력을 확인했다. 다행이다. 엄마의 생일은 방학
한 중간에 있고, 올해는 엄마의 생일상을 차려드릴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꼭 엄마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엄마가 이 세상에 있어
줘서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엄마가 내 삶에서 얼마나 큰 존재인지
꼭 말씀드릴 거다.
엄마의 가치관은 '나'라는 인간의 참 많은 테두리를 형성했다. 물
론 엄마와 생각이 달라서 많이 다투기도 하고,(엄마는 다툰다는
말이 성립할 수 없다고 하신다. 어떻게 엄마와 딸이 싸우냐고 하
시는 게다. 그치만 굳이 말하자면 의견의 대립임에는 틀림없다.)
절대로 엄마의 삶 중에서 닮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내
가 엄마였더라면 안그랬을 것이다..하는 선택의 문제;;), 이런 저
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 정신적인 바탕은 엄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도 엄마의 뒤를 이어서 한 세대를 살아가겠지
만, 어릴 적의 가정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서, 난 아마
내가 만들어갈 가족의 생일상을 다같이 챙겨서 그런 분위기를 갖
는 또다른 가족으로 이어가게 될 게다. 가정이라는 건..그런 의미
인가보다..싶다.
※ 엄마의 생신이라고 해야겠지만, 그저 지금은 생일이라는 말이
핵심 단어니까..굳이 생신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일이라는 날짜에 대해 둔감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스스로.
어렸을 때부터 항상 생일은 엄마가, 그리고 가족들이 챙겨주었다.
엄마는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완벽한 엄마를 만들어냈고, 단 한번
도 내 생일을 잊었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릴 때면 생일
은 당연히 화려하게 약간의 요란이란 양념을 첨가하는 날로 으례
생각했고, 일년에 한번 있는 생일이 매번 기다려졌다. 오죽 했으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미친 토끼(라고 번역되었다;;;mad
rabbit정도 였을까나?;;)와 그의 친구들이 '안생일 축하파티'를 하는
것이 기억에 남아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안생일을 축하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일년에 특별한 날이 한번 밖에 없으니까 남은
날들을 축하하는 거야..라고 말하던 미친 토끼의 논리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루이스 캐롤의 원문을 읽지 못해서 그게 그의 아이디어
인지, 디즈니에서 만들면서 새로 삽입한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나 멋진 아이디어였다.
대학을 들어오고, 집을 나와서 살게 되면서 생일을 챙긴다는 건 그
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생일은 3월 중에서도 한참 먼저라 중고
등학교 때부터 그저, 한해 전의 친구들이 생일을 챙겨주곤 했었다.
개학하고 정신없고, 새친구들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고, 새로운 교
실, 새로운 사람들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생일이 지나버리곤 했었
으니까..대학을 오면서 그건 더 심해진 것 같다. 정말이지 개강하고
나면 정신이 없었다. 예과 때에는 새터 마무리 하느라 정신없이 생
일이 지났고, 본과 와서는 세상에, 3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험을 준비해야했다.-_-
게다가 어제가 생일이었다는 것을 난 하루 전날인 5일에 깨달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내일이 생일이구나..하다가 하루종일 족보를 쓰고,
한창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는 형진이에게서 세시간쯤 일찍 생일축하
를 받고, 다시 공부로 돌아갔다. 딱히 생일이라고 해서 어릴 때마냥
두근거리는 건 아마도 대학 입학하고 몇 해를 거치면서 점점 가라앉
아갔을 게다. 생일..생일이구나..이런 식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생일'
이라는 두 음절의 단어가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구나..싶었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아침에 집에 전화해서 엄마한테 고맙다는 인사
를 드리기도 했는데, 참 밍숭맹숭하게 있었다. 오히려 잠에 취한 날,
집에서 식구들이 전화해서 차례로 돌아가며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
주며 깨워주었다. 엄마는 내가 없지만, 그래도 생일상을 차렸고, 전
화를 해서는 생일상을 차렸다고, 생일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가
족과 떨어져서 생활하면서, 생일에 미역국도 못먹고 있을 딸을 생각
한, 당신 나름의 생일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작년에는 햇
반 미역국을 사먹었다.;;;)
사실은 축하받고 싶었다. 생일이구나..라고 늦게 인지하긴 했지만,
생일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되뇌어지면서 새삼스레 낯설었지만, 태어
나주어서, 내가 지금 여기에 있기에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라면,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면, 없어서는 안되는 정도는 아
닐지라도 누군가의 삶 속에서 무언가의 의미를 갖게 된다면 나는 축
하받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그렇게 축하받고 싶었다. 생일이
라서 기뻐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왜 축하하고 축하받는지
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으례껏, 어릴 때부터 축하해오던
일이고, 축하받던 일이고, 그리고 뭔가 화려함이 깃든, 하나의 기쁜
습관이었다.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것을 매개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
이고, 맛있는 것을 먹고, 당사자를 축하하고, 멋진 날을 맞이했음을
축하하는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 문득 피어나서 자리잡은 생각
은..내가 원했던 것이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누군가가 되었기
에 존재해서 다행이다..라는 의미의 축하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
다는 것이다. 글을 쓴지 워낙 오래라 예전처럼 매끄러운 문장은 나
오질 않는데, 항상 내 삶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축이 있다면, 그 중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나를 갈등하게 만드는 것은, 적은 사람에게
깊이있는 사람이 될 것인지, 혹은 다수에게 적당한 깊이를 갖는 사람
이 될 것인지의 문제였다.
어쨌든, 자라가면서 엄마가 생일을 잊었다거나, 해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생일을 챙기지 않는 집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해마
다 달력이 나오면 생일부터 표시하는 우리집에 꽤나 만족스러워졌
다. (이렇게 쓰고보니 참 단순하다, 나란 사람은..)우리 남매야 상관
없지만, 엄마와 아빠는 음력 생일을 챙기고 있었으니까...
어릴 적에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최고의 엄마 생일 선물은 엄마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우리 가족의 생일은 매번
화려했다. 미역국과 붉은 팥으로 물든 찹쌀밥, 명태전, 나물, 너비아
니구이, 갖가지 계절 과일들, 커다란 도미..매번 조금씩 달라지긴 했
지만 엄마는 생일 전날부터 미역을 자르고, 팥과 찹쌀을 불리고, 명
태를 냉동고에서 냉장실로 옮겨서 적당히 녹이고, 나물을 씻고, 고
기를 준비하고, 시장-정말로 시장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골목골
목 신기한 음식들이 즐비한 재래시장-그리고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음식들을 완성시켰다.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지는, 가득 차는 거한
생일상이었다. 항상 모두의 생일 때마다 깨우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
리고, 식탁에서 내려가서 상을 펴놓고, 식탁에 올라와 있는 음식들로
상을 차리고,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랬다. 하
지만 엄마의 생일에는 미역국과 명태전, 작은 생선 한마리, 때때로는
나물만 오를 뿐이어서, 거기에다 엄마가 생일상을 따로 차리진 않고,
그저 식탁에서 케이크에 초가 잠깐 타다 말 뿐이어서, 그래서 엄마가
엄마 생일도 다른 가족들의 생일만큼 화려한 생일상을 갖기를 원했
다. 지금도 엄마에게 해주고픈 선물은 어차피 내가 사줄 수 없는 가
격대의 화장품이나, 옷이나, 가방이나 그런 것들이 아니라(집에서
용돈받는 거니까 엄마가 당신 스스로 사시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생일에 펴지는 상을 가득 채운 생일상인 게다.
어른이 되면, 매년 엄마의 생일상을 차려드릴 수 있을 줄 알았다.
덧붙여서, 엄마의 생일은 음력 칠석이라 할머니 제사와 겹치기도 해
서, 그날은 정말, 어릴 때에는 몰랐지만, 자기 생일에 미역국도 못먹
고 일을 해야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머..간간이 미역
국에 케이크가 등장하는 날도 기억 속에 있지만..그래도..생일상은
없었다.
각설하고, 어른이 되면 매년 차려드릴 수 있을 줄 알았다던 생일상
은 내가 법적인 어른이 된 후로 단 한번도 없었다. 항상 서울에서
바쁘게 있다가 내려갔고, 엄마 생일에 있긴 했는데 무얼하고 있었
는지 모르겠다.-_-a심지어 작년에는 8월 16일에 개강했는데, 엄마
의 생일은 8월 말이어서, 전화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엄마의 생일상을 지금까지 단 한번밖에 못 차려드렸다. 중3때인가,
고1 때쯤, 전까지 벼르고 벼르다가 올해는 엄마 생일상을 차리고
말 것이라고 선포했고, 돈을 받아서 정민이랑 할인마트에 가서 큰
도미를 고르고, 엄마가 생일상에 올리던 음식들을, 기억을 더듬어
가며 사서는 집에 가자마자 손질을 시작했다.
결국 나물은 엄마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지만(나물을 어떻게 만
드는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지금 하라고 한다면 적
어도 3색까지는 하겠다..ㅋㅋ),도미의 비늘을 긁어내고, 배를 가르
고, 내장을 꺼내고, 소금에 재우고, 미역을 꺼내다가 물에 불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도미를 굽고, 미역국을 끓였다. 아, 붉은
팥이 들어간 찹쌀밥도 했다. 스스로도 뿌듯했고, 참 힘들었다. 그
래도 엄마의 생일상에 하나라도 더 들어갔다는 게 그렇게 기쁠 수
가 없었다. 그날 생일상을 폈는지, 식탁이었는지는 아쉽게도 기억
이 나질 않는다.
방금 글을 쓰다가, 올해는 가족들의 생일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
을 새삼 깨닫고, 달력을 확인했다. 다행이다. 엄마의 생일은 방학
한 중간에 있고, 올해는 엄마의 생일상을 차려드릴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꼭 엄마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엄마가 이 세상에 있어
줘서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엄마가 내 삶에서 얼마나 큰 존재인지
꼭 말씀드릴 거다.
엄마의 가치관은 '나'라는 인간의 참 많은 테두리를 형성했다. 물
론 엄마와 생각이 달라서 많이 다투기도 하고,(엄마는 다툰다는
말이 성립할 수 없다고 하신다. 어떻게 엄마와 딸이 싸우냐고 하
시는 게다. 그치만 굳이 말하자면 의견의 대립임에는 틀림없다.)
절대로 엄마의 삶 중에서 닮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내
가 엄마였더라면 안그랬을 것이다..하는 선택의 문제;;), 이런 저
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 정신적인 바탕은 엄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도 엄마의 뒤를 이어서 한 세대를 살아가겠지
만, 어릴 적의 가정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서, 난 아마
내가 만들어갈 가족의 생일상을 다같이 챙겨서 그런 분위기를 갖
는 또다른 가족으로 이어가게 될 게다. 가정이라는 건..그런 의미
인가보다..싶다.
※ 엄마의 생신이라고 해야겠지만, 그저 지금은 생일이라는 말이
핵심 단어니까..굳이 생신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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