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VS. 평화

분류없음 | 2008/09/05 09:17 | 박예진
#1.

오늘 딱히 뭔가가 정해지는 날도 아니고, 그저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제출해야하는 것뿐인데,
매우매우 떨리는 중. 긴장감이 고조되어 아침부터, 평소보다 15~20분 정도 늦어지면서도 끝까지
정성을 들여서 씻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했다. 그렇다고 딱히 다르냐면, 그것도 아닌, 오히려
증명사진을 찍던 어제보다는 화장기가 없는 얼굴.

해야할 일들을 몇가지 남겨놓고, 이유없는 긴장감은 급상승 중이고, 무얼 먼저 하면 좋을지는 이미
나와있으나,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 후~하~ 괜찮아,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두쿵두쿵!!!!! 가슴
이 터져버릴 것 같아.  >_<


#2.

뜬금없이 갑자기 생각난 건데, 난 '사랑한다'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는 걸 극도로 조심하는 아이였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사랑하는 감정이 휘발되거나 희석되는 것만 같았고, 함부로 내뱉으면 부정을
타는 말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러웠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요즘 내과는 좀 살만해?"라고 물었을 때,
아무 생각없이, "응~요즘엔 좀 널럴해~"라고 대답했다가는 곧이어서 결코 널럴할 수 없는 일들이
몸이 서너개쯤 있어야 겨우 막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휘몰아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에게 '사랑해'라는 말은 엄청난 각오를 하고 나서야 겨우 내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형진이가 오래 기다리느라 지쳤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사랑해'라고 누구에게나 몇번씩이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감정을 정의하지 못하겠다. 혹자들은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너무나도 광범
위하고 heterogenous하고 그 정도나 깊이가 다양하다고 풀이를 하지만, 솔직히 입에 함부로 올리지
못했을 때에는, 함부로 올리지 못하는 만큼 조심스럽고, 곧 깨지기라도 할 양으로 소중하던 느낌이었
는데, 그것 역시 느낌일 뿐,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정의는 아니었던 셈이다.

내가 "사랑해"라고 입술로 읊조릴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미를 담아서 말을 하는 걸까. 그건
마치 전래동화에 나오던, 손을 이불 밖으로 빼놓고 자는지, 이불 속으로 넣고 자는지를 질문받고,
신경쓰느라 한숨도 못 잤다던 할아버지의 이야기 만큼이나 난감한 질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누
군가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싶은 순간에 잠깐 멈추어서서, '난 이 사람에게 지금 어떠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 사람의 어떠어떠한 면이 나에게 어떠어떠하게 느껴지고 있어. 그러므로 나는
이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라고 일일이 분석할 수는 없잖은가.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웃기고, 파라노이드한 일이다.

하지만, '사랑해'라는 말이 소중하든 소중하지 않든, 깨질듯이 불안하든 탄탄하든 간에 그 말이 훈훈
한 느낌으로 자주 나올 수 있다는 건, 그래도 내가 세상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고는, 입술 꼬리로 잔잔하게 미소를 흘릴 수 있어서,
그래서 좋다. 이 시점에 홍차향이 솔솔 퍼져나가는 갓구워낸 홍차쿠키와, 드문드문 호두가 들어간 스
콘과,  갓 우려내어 아직 컵 가장자리로 모락모락 김이 타고 오르는 잉글리쉬 블랙퍼스트 한 잔이
예쁜 풀 티세트에 담겨져서 눈 앞에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할 것이다. 아침에 여유롭게 티세트를
즐길 날이...곧 온다.ㅋㅋㅋ (제발 나에게도 허락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나, 그리 못
살 것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구나.ㅋㅋ)
2008/09/05 09:17 2008/09/0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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