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or Piazolla와 함께 하는 밤.

분류없음 | 2008/06/14 02:49 | 박예진
나는 내과 인턴이다. 그리고 어서 빨리 '내과 인턴'이 아닌, '내과 의사 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지금 이 시기의 인턴들은, 이제는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윤곽이 잡혀야 한다고들 얘기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원서를 넣는 시기의 끝물까지도 인턴들은 고민한다. 당연한 고민이다. 평생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지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가치들만해도 너무나도 다양한데, 돈이나 시간, QoL, 의료 행위에 대한 뿌듯함 등등 개인이 선택할 가치관을 선택하는 것부터가 궁극적으로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모두 다 포기하기 어려운 가치관들이니 우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노릇이고, 한 가지 가치를 선택한다손 치더라도 그 가치를 가장 가까이 만족시킬 수 있는 과가 어느 과인지를 유심히 살펴보고, 물어보고, 알아보아야 하니 또 노력과 시간이 아니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고민의 폭풍 앞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바가 뚜렷했던 나로서는 가치에 대한 고민이라든지, 가치에 합당하는 과를 찾는 데서 헤매는 등의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충분히 있다고 타인에게는 보여지지만, 사람마다 저마다의 고민이 있는지라, 우선은 전공의 시험 성적을 걱정해야 하고,  그리고 이것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길이 맞는지, 내가 정말 원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지만, 너무 오래 습관처럼 생각해온 일이라 당당하게 '이러니까!!!!'라고 내세울만한 '원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다만, 너무도 오래 바라오던 일이라 되지 않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그렇게 되면 난 뭘 해야하나...

굳이 자신을 혹사시키고 싶은 생각은 아니지만,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르게 '그래도 의사라면..'하는 생각에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감수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고, 그건 부당하다고 가끔씩 여겨지는 여러가지 상황들에서 파생되는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인간 '의사'가 갖는 한계점에 도달한 환자들의 manage나 가끔씩 겪을 때면 울고 싶어지는, 정말 절실하게 몸이 너댓개 쯤으로 나눠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한 일들-절대로 동시에 해낼 수 없지만, 동시에 해내야만 하는 일들을 앞에 두었을 때의 어려움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게다. 언젠가 한번은 어딘지 모르게 '변태 같은 성향'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뭔가 깊숙히 들어가는 듯한 설렘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logic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히 매력적이다. 확실히 내 삶의 '여유' 내지는 '여가'를 갉아먹게 될 것임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다만, 바쁜 프로토콜들 속에서 '내'가 '인간'이고, '환자'가 '인간'이고, '환자의 보호자'가 인간이고, '환자'들이 질병으로 인해 심신이 지쳐있음을 잊지 않고, 늘어만 가는 짜증 속에서 스스로에게 제동을 걸고 일부러라도 한번 더 웃어주고, 한번 더 들어주고, 한번 더 말해줄 수 있는 짬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언제나, 언제나 잊지 않고 떠올릴 수 있기를 다만 조심스럽게 바라볼 뿐이다. 바쁜 중에 irritable해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어서 누구나 다 유혹을 받고, 유혹을 받았다고 느끼기도 전에, 유혹을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온몸으로 irritable해지는 상황을 다 받아내는 경우가 허다하고, 힘들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면서도 irritable한 상태는 또한 전염성이 강해서 용서하지 못할, 혹은 힐난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스스로 제동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irritable해지는 순간에 멈춰서서 한번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으로도, 혹은 다른 긍정적인 형태로 ,ventilation을 해보는 것으로도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거나, 혹은 느슨하게 늘어뜨릴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신기하며,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판단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초심'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이러한 의식적인 노력을, 내가 언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떠올리고 행할 수 있기를 다만 바란다.

한달은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내과는 나쁘지 않다. 아직도 일주일이나 남았고, 내 앞에 어떤 파란만장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또 한번 의사의 길에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고, 환자를 대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조금은 더 붙었고, 나쁘게는 (아직 겉으로 폭발한 적은 없지만) '어떤' 환자 내지 환자 보호자에 대해서는 짜증스러워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고, 이런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하는 프로토콜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고, 아직은 인턴임을 내세워 뒤에 숨는 것도 익혔고(사실, '인턴'이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한계점..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그나마 처음에는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 마저 느꼈으므로;;), 일을 어떤 식으로 해야겠다는 윤곽이 잡혀가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힘들어 보이지만, 안착했으면 하는 소망이 슬슬 생기기 시작해서, 내과가 많이 남아도 상관은 없으니, 그저 '내과 의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2008/06/14 02:49 2008/06/14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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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8/09/2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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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방문자 2009/12/0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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